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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 체크인부터 ‘도깨비’ 빨간 문까지 명대사·OST·소품 따라 되살아나는 K-드라마의 기억 화면 속 촬영지가 현실의 여행지로 바뀌는 순간 취향 바코드 다섯 개 찍고, 다음 여행지를 만나다
조혜지 아나운서가 하이커그라운드 4층 ‘K-드라마 체험 전시’ 입구에서 전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뒤편에는 ‘호텔 델루나’의 프런트를 재현한 공간과 관람객을 위한 ‘메모리 아카이브’ 리플릿이 보인다.
서울 청계천 옆 하이커그라운드 4층에서 열리고 있는 ‘K-드라마 체험 전시’는 애정하는 드라마의 흔적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대사와 풍경, 음악, 소품을 직접 고르고 나면 그제야 진짜 질문이 날아온다. 그래서, 당신은 어디로 떠나고 싶은가.
전시장 입구는 ‘호텔 델루나’의 낯익은 프런트다. 체크인을 마치면 ‘메모리 아카이브’라는 리플릿을 받는다. 여행지도, 스탬프북이 아니다. 전시장을 돌며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하나씩 모으는 개인 기록장이다.
이날 안내를 맡은 조혜지 아나운서가 말했다.
“누구나 같은 여행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누구는 바다만 보이면 신발부터 벗고, 누구는 숲길을 발견하면 걸음 수부터 확인한다. 여행 취향도 제각각이다.
‘K-드라마 체험 전시’ SCRIPT 공간에 드라마 명대사 카드가 줄지어 걸려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대사가 보인다. 관람객은 72개 명대사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라 자신의 ‘메모리 아카이브’에 담을 수 있다.
첫 공간은 대사다. 사랑, 위로, 용기, 이별, 성장, 희망이라는 여섯 키워드 아래 25편의 드라마에서 고른 명대사 72개가 쫙 깔렸다.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호텔 델루나’ ‘사랑의 불시착’ ‘빈센조’ ‘갯마을 차차차’ ‘우리들의 블루스’ ‘눈물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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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도 머릿속 TV가 혼자 켜진다.
카드를 뒤집으면 작품을 확인할 수 있고 QR코드를 찍으면 영상도 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대사 한 장은 가져간다. 줄거리는 희미해져도 심장에 한번 박힌 명대사는 죽을 때까지 따라온다. “당신은 당신의 조선을 구하시오, 나는 당신을 구하겠소”,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캬아!
뒤에는 작가의 책상도 있다. “끝난 사랑 이야기에도, 다른 결말은 있을까요?” 같은 상황이 주어지고 직접 다음 대사를 써본다. 배우는 부담스럽지만 작가는 잠깐 해볼 만하다. 적어도 NG를 외치는 감독은 없으니.
풍경 코너에서는 도시, 바다, 자연, 마을·일상, 전통·역사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카드를 리더기에 올리면 관련 드라마 영상이 뜬다. ‘미스터 션샤인’의 오래된 공간이나 ‘갯마을 차차차’ ‘우리들의 블루스’의 바다와 마을처럼, 배우 뒤에 머물던 풍경이 이번에는 앞으로 스윽 나선다.
‘K-드라마 체험 전시’ SOUND 공간의 ‘TRAVEL PLAYLIST’. 관람객은 드라이브, 밤, 비, 여행, 산책, 독서 등 자신의 기분에 맞는 테마를 고른 뒤 헤드폰으로 K-드라마 OST를 감상할 수 있다.
SOUND 코너에서는 드라이브, 밤, 비, 여행, 산책, 독서 가운데 하나를 골라 헤드폰을 쓴다. ‘도깨비’ OST ‘Stay With Me’. 펀치와 찬열의 곡. 펀치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지금 들어도 혼의 멱살을 잡아끈다. 한때 내 휴대전화 벨소리였다. 전화가 와도 몇 초 더 듣고 싶어 더디 받았으니 벨소리 본업에는 썩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드라마는 그렇게 음악으로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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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몇 초만 들어도 인물과 풍경이 불쑥 소환되어 버린다. 12종의 LP 형태 콘텐츠 가운데 작은 LP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예쁘다.
‘포핸즈(Four Hands)’ 촬영에 실제 사용된 피아노가 전시돼 있다. 작품 속 해당 장면과 스틸 이미지, 악보를 함께 볼 수 있어 화면 안 소품과 현실의 물건을 나란히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홍해인이 기억을 잃기 전, 기억을 되찾은 뒤의 자신이 읽을 수 있도록 남편에 대해 적어둔 메모가 전시돼 있다. 네잎클로버 장식과 함께 남겨진 이 수첩은 작품 속에서 홍해인의 기억과 사랑을 잇는 소품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가 망자에게 건네는 찻잔. 이 차를 마시면 망자는 현세의 기억을 잊고 다음 길로 떠나게 된다. 붉은 목도리와 함께 작품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 소품이다.
팬이라면 드라마 속 실제 소품 앞에서 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포핸즈’ 촬영에 쓰인 피아노와 ‘스타트업’ ‘눈물의 여왕’ ‘갯마을 차차차’ ‘유미의 세포들’ ‘빈센조’의 실제 대본, 배우 사인을 볼 수 있다. 조 아나운서는 자신도 ‘경이로운 소문’에 앵커 역으로 출연했다고 했다.
‘K-드라마 체험 전시’에 실제 촬영 소품으로 사용된 ‘도깨비’의 검이 전시돼 있다. 화면 속에서 김신의 운명을 상징했던 물건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드라마 팬이라면 발걸음을 늦출 수밖에 없다.
‘도깨비’에서 김신이 문을 열 때마다 다른 곳으로 통했던 빨간 문을 재현한 공간. 이 문을 지나면 전시는 드라마의 기억을 떠올리는 단계에서 실제 여행지를 고르는 단계로 넘어간다.
‘도깨비’의 상징과 같은 커다란 검과 김선의 초상화도 눈에 띈다. 화면 안에 있던 소품이 눈앞에 있다. 덕질의 종착역에 다다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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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빨간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아 열면 질문이 바뀐다. “무슨 드라마를 좋아하세요?”에서 “그럼 어디로 가시겠어요?”로.
대표적인 곳이 강릉 주문진 영진해변 방사제다. ‘도깨비’에서 은탁이 촛불을 불어 김신을 처음 불러냈던 곳. 드라마에선 로맨스만 보였는데, 여행자의 눈으로 보니 주소가 궁금해진다. 드라마가 내비게이션까지 켰다.
전시 마지막 ‘DESTINATION’ 공간에서 관람객이 지금까지 고른 대사·풍경·음악·소품·여행 취향의 바코드를 키오스크에 차례로 스캔하고 있다. 다섯 가지 선택을 모두 입력하면 자신의 취향과 연결된 여행지를 추천받을 수 있다.
마지막 ‘DESTINATION’에서는 지금까지 고른 대사, 풍경, 음악, 소품, 여행 취향의 바코드 다섯 개를 리더기에 차례로 갖다 댄다. 내 취향에 맞는 여행지가 나온다. ‘YOUR NEXT DESTINATION’ 티켓의 QR코드를 찍으면 여행지 정보와 관련 여행상품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구경하러 왔는데 어느새 다음 여행을 알아보고 있다. 지갑이 귀를 쫑긋 세우는 소리가 들린다.
전시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이 방명록 벽에 남긴 메시지.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 등 여러 언어의 메모가 붙어 있어 K-드라마를 찾아온 국내외 팬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K-드라마 체험 전시’ 내부 전경. 다양한 드라마의 포스터와 스틸컷, 영상, 소품을 공간별로 배치해 관람객이 대사와 풍경, 음악, 소품을 따라 전시를 체험하도록 구성했다.
전시는 한국관광공사와 스튜디오드래곤이 약 40개 작품 IP를 활용해 마련했다. 11월 19일까지 하이커그라운드 4층에서 만날 수 있다.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은 올라갔다. 다 끝났는데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대사 한 줄과 음악 한 곡, 빨간 문 하나가 결국 여행 캐리어를 열게 한다.
TV는 껐다. 이제 신발을 신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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